“자리”

행복한 세상 열한번 째 이야기

2014-07-08     유미숙

숨이 막힐 듯 더운 여름 날의 열기가 대지 위를 달구고 그늘도 못만드는 가로수를 원망스레 바라보며 휙휙 감아도는 열기에 모든 게 몽롱해 보이기도 하는 날인데..
저만치 아이를 업고 두 손 가득 짐보따리를 들고 오는 어린 엄마가 안쓰러웠습니다.

일곱 살 손녀가 엉엉 울며 할머니를 이끌어 보지만 말도 못 듣고 못하는 할머니에게 아이의 철없는 요구는 한숨을 지어내고 안타까운 시간이 이렇게 또 한날을 만들고 지나갑니다

뻘뻘 땀을 흘리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까지 30KG이 넘는 옷상자를 배달해주는 택배 아저씨는 몰라보게 야위어 보였습니다

엄마자리, 아내자리, 언니자리, 친구자리, 선배자리..
내게 주어진 자리들을 헤아려 봅니다

이 자리들이 어쩌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,
가끔씩은, 아주 가끔씩은 남의 자리도 한번 씩 흘깃거려 봅니다
‘내가 저 자리였다면 ..
그 때 그랬었더라면..‘
별 소득도 없는 상념들 사이를 얼마간 헤매어 볼 때도 있습니다

‘항상 기뻐하라, 쉬지 말고 기도하라, 범사에 감사하라!“..
내가 있는 자리가 버거워지고, 남의 자리가 엿보아지고, 때로 먼지 털듯 모든 관계의 자리를 훌훌 털고 싶을 때..머리에서 가슴으로 완전히 내려가진 않아도 그 중간 어디까지 꼭꼭 붙어
내 자리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있는 문구입니다
내가 흔들렸던 그 곳으로 돌아가 나를 보면,
감사를 잃었고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에 머리부터 가슴 사이 꾹 박혀 있는 이 문구를 곱씹으며 다시금 감사한 내 자리로 돌아옵니다

있고픈 자리는 가지지 못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 이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자리임도 알기에 주신 몫만큼의 오늘 이 자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
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
이 자리에 놓아 준 그들에게도 감사하며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