감정과 함께 삶을 걷다 #14(경청 그리고 기억함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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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정과 함께 삶을 걷다 #14(경청 그리고 기억함)
  • 이지현 보호관찰위원(심리상담사)
  • 승인 2020.04.29 22:1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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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알고 남을 알아 얻는 작은 미소
이지현 보호관찰위원(심리상담사)
이지현 보호관찰위원(심리상담사)

[서울포커스신문]  누군가가 자신이 하는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다.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은 많은 양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 경청(傾聽)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.

김 과장은 이 팀장의 변덕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.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해 준 것도 아니면서 김 과장이 일주일 넘게 준비한 계획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제대로 계획안 설명도 못하고 방을 나와야 했다. 퇴근 후 발걸음을 옮기는 길에 잔잔한 미소의 소유자 봉달이가 생각나서 휴대폰을 꺼내 연락했고, 사업체를 운영하는 봉달이는 선뜻 시간을 내주어 두 사람이 오랜만에 까페에 마주 앉는다. 남고 시절부터 미주알고주알 마음을 나누던 두 사람은 표정만 봐도 서로의 기분을 아는지, “? 니 무슨 일 있나? 표정이 와 그러노?”질문하는 봉달이에게 김과장은 침을 튀어가며 이 팀장 욕을 한바가지 쏟아냈다. 봉달이는 별말 없이 미소를 머금고 김 과장이 한참이고 떠드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.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? 김 과장은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뱉었다. “우짜겠노? 또 연구해 봐야지 아! 그 얼라가 뭐라 카는지 원 그 뜻을 모르겠다마!”대화를 마치고 둘은 집으로 갔고, 다음 날 김 과장은 어제의 기분은 털어버리고 힘차게 회사로 향했다.

봉달이와 김과장 사이에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말 없이 김 과장의 엄청난 쏟아냄을 봉달이가 들어줬을 뿐이다. 경청에는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. 그리고 비슷한 힘을 가진 또 하나의 요소가 기억함이다.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은 들어주는 것만큼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다. 기대하지 않았는데 필요하다고 지나가면서 말했던 물건을 슬쩍 내미는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받는 것이 마땅하다. 기억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며 역으로 기억을 해주는 역할은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.

사람이 누군가에게 변화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은 충분히 일상에서도 가능하다.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한다면 우리도 누군가의 봉달이가 될 수 있다. 그리고 어떤 대상을 기억해 주는 특권을 누려보는 것또한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.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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