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을 꺼려하고 자신의 내면 상태를 숨김으로 타인에게 은근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보여 지기를 원한다.
생각해 본적 있는가? 감정을 숨겨버릴 때 나의 내면은 어떤지
그 순간 내 자신은 마음의 상함으로 어디에 부딪치면 새파란 멍이 드는 것처럼 여기저기 내면에 상흔이 남기 시작한다.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다보면 상대적 약자(자녀 또는 부하직원 등)나 생활의 우연 속 잘못 걸린 엉뚱한 타인, 예를 들면 5분이 넘었으니 주차비를 더 지불해야 한다 안내하는 주차요원에게 말도 안 되는 삐뚤어진 방법으로 내면의 쌓인 스트레스를 방출한다. 언성을 마구 높인 자신을 보며 나중에 굳이 그렇게 까지 화를 냈어야 하나? 생각했던 일이 유독 소수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. 마음에 손을 얹고 솔직히 나를 좀 바라보자.
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.
분노는 가장 표면에 위치하고 대부분 양육자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배우게 되는 첫 번째 감정이다. 우리는 특별히 학습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내는 법을 알고 있다. 신기한 일이다. 물론 보통의 경우는 사회성으로 잘 포장 되어 있고 분노를 느끼지만 조심스러워 한다.
겉은 분노의 감정으로 포장되어 있는데, 감정을 잘 살펴보는 연습을 하다보면 그 밑에 감정들이 조금씩 보여 질 것이다. 감정의 가장 깊은 경지는 고독(孤獨)이라 할 수 있다. 외로움도 꽤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이지만 고독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. 외로움은 결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고,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다면 고독감을 누릴 수 있다. 외로움을 다룰 수 있다는 의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. 고독(孤獨)은 존재감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어떤 결핍에서 오는 부족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림으로 얻어지는 감정으로, 고요한 시간 사색하고 건강한 자기(self, 코헛)를 만나고 객관적으로 나를 받아들일 때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.
간결한 문장과 언어로 영혼을 울리는 작가이자 심리학자 헨리 나우웬 은, 그의 저서 <상처입은 치유자>에서 자신의 내면의 삶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고, 자신의 다양한 경험에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자아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다.
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표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질수록 이 사회는 소소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고 힘겨운 삶 속 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.
나의 깊은 곳을 알아가야하는것이라는걸 느끼게 되네요
좋은글감사해요